지나가는 이야기 #2.외래종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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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나의 세상은 급격하게 변했다.

“오늘은 무엇을 그릴까?”, “어떤 것을 보고, 읽은 뒤 작품에 어떤 메시지를 담을까?”와 같은 일상적인 고민들을 하며 살아가던 나. ‘경제적 개념이 전무했던 나’를 예기치 못하게 경제적 어려움에 봉착하게 만드는 사회적 문제들이 발생했고, 자연스럽게 나를 극심한 부의 양극화가 만연해진 세상 속에서 적응하며 해답을 찾아가야만 하는 환경에 처하게 만들었다.

‘외래종 인간(2023년作)’은 이러한 변화 속에서 현재 나의 위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팬데믹 이후의 세계는 마치 새로운 서식지와 같아서, 익숙했던 일상 속에서조차 나는 마치 ‘외래종’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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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주안, 외래종 인간, Oil on canvas, 160 x 160cm, 2023.

작품 속 괴리감의 표현

‘외래종 인간 (2023년作)’ 작품은 급격하게 변화된 환경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거칠게 그려내며, 일상적인 생활을 이어가면서도 회사 다닌 지 3년이 다 되어가는 현재까지도 완전히 적응하지 못하는 작가의 내면을 세심하게 탐구하고자 한다.

“화이트 칼라 직장인들의 삶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 “오로지 나만을 위해 일해온 나”는 이제 다른 사람의 의견에 의존해 어떠한 결과물들의 답을 찾아야 하며, 이는 월급으로 치환되는, 월급이라는 생명줄을 얻기 위해 힘든 노동의 굴레에 빠지게 되었다.

이전 작업들에서 언급했었던 ‘가짜 밀도’에 대해, 나는 나를 둘러싼 많은 물질적 요소들이 실질적으로 ‘내 지적 부재를 가리는 표면적인 장식’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는데, 그 상황을 만들어낸 나야말로 ‘가짜 밀도’ 그 자체이지 않을까. 만약 ‘당시의 가짜 밀도가 아직 포장 봉지를 뜯기 전의 상태였다면, 현재의 가짜 밀도는 포장지가 벗겨져 약간은 변질되었으나 여전히 버리기는 아까운 상태’로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여태까지 이루어 왔다고 생각했던 나의 존재와 살기위해 습득한 다양한 생계 유지 기술들이, 실상 다른 사람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안정적인 월급을 받기 위해 내 의견을 억누르며 자신을 계속해서 희생해야 하는 이 현실에서, 나 자신이 계속해서 부정당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런 나조차도 ‘가짜 밀도’라는 사실을 인식할 때 드는 비극적인 슬픔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나는 새롭게 지어지는 국평 아파트, 노후 대비를 위한 자금 마련 등 경제적 상황의 변화에 맞서기 위해, 세상의 빠른 변화에 순응하려는 노력을 넘어서 생존을 위한 필연적인 선택을 하고 있다. ‘외래종 인간’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나의 내적 갈등과 외적 적응 과정을 깊이 있게 탐구하며, 어울릴 듯하면서도 어울리지 않는 도형 간의 조화를 추구하며 만들게된 작품이다.

내적 갈등과 외적 적응의 깊이 있는 탐구

‘외래종 인간(2023년作)’작품에선, 내가 경제활동을 통한 현실 생존에서 겪는 내적 갈등과 외적 적응 과정을 깊이 있게 다루고자 했다. 이는 빠른 초안 작성과 수정을 넘어, 시간을 들여 차곡차곡 쌓아 올린 터치를 통해 과거를 성찰하며 자아 탐구를 한 과거의 작품 제작 과정과 대비된다.

매일 퇴근 후 조금씩 시간을 할애해 완성한 이 작품은 일상에서의 성찰을 담고 있다. 매일 반복적인 삶을 살아가면서도 가끔 출근할때와 퇴근할때 하늘을 바라보며 ‘세상이 복잡하게 보이면서도 실은 단순화된 구조로 이루어져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는 수학에서 모든 것이 점, 선, 면으로 구성되어 있듯, 원, 사각형, 삼각형과 같은 기본 형태들이 모여 입체를 이루고 개성을 창출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는 생각으로 연결되었다.

하지만 경제활동을 시작하며, 이러한 도형들이 보일듯 보이지 않고, ​ 단순해 보이면서도 그렇지 않고,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느낌을 지속적으로 받으며, 결국 모든 상황 속에서 그 연결 고리들의 관계를 하나씩 풀어나가지 않으면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한 방향을 모색하며 나의 기존 작품들 속에 등장하는 기호들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선형대수학에서 내적이 주어진 벡터공간을 ‘내적 공간(inner product space)’이라 하는데, ‘<, >’ 기호는 수학에서 내적을 나타낼 때 사용된다. 이는 벡터들의 각, 거리, 도형 등의 방정식을 구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마치 이러한 과정은 내 작품 제작 과정에서 끊임없이 생성되는 기호 및 도형들의 생성 과정과 유사함을 느낄 수 있었고, 이에 흥미를 갖고 해당 기호들을 작품에 접목하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작은 답을 얻게 되었는데, 내 작품에 표현된 다양한 ‘기호(Symbol), 형태(Form), 색채(Color)’는 경험을 기반으로 한 이전 작업의 모티브인 ‘가짜 밀도(Fake density)’를 형성하는 기초로서, 캔버스라는 평면 위에서 내적 세계(inner world)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이는 내적 공간(inner product space)의 기호들이 상호작용하듯, 시각적 요소들이 서로를 보완하고 의지하며 캔버스 안에서 현존재(Dasein) 함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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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주안, 외래종 인간, Oil on canvas, 160 x 160cm, 2023.

변화와 적응을 통한 자아 발견

코로나 팬데믹 이후의 세계는 나에게 많은 도전을 안겨주었지만, 동시에 나 자신의 존재를 재발견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할 기회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외래종 인간(2023년作)’은 이러한 변화 속에서 나의 위치를 찾아가는 개인의 여정을 통해, 인간의 내적 갈등과 외적 적응 과정을 섬세하게 탐구하려 한다.

이 작품은 거시적으로 변화된 세계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우리 각자가 겪는 환경 변화와 그 속에서 파생된 고민과 도전, 그리고 더 깊은 곳에서 발견하는 새로운 자아에 대한 깊은 이해를 제공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