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본질이란 무엇일까? 인간의 무의식 세계를 탐험하는 것?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창작의 고통’이라는 용어가 무의미하지 않도록 예술가의 위치에서 끊임 없이 생각하고, 고민하며 작품을 만들어낸다는 것. 그것이 예술가의 기본일까.
인간은 산이 그곳에 있기 때문에 산에 오른다. 예술가는 예술이 세상에 없기 때문에 작품을 만든다.
미국 미술가 ‘칼 안드레 (September 16, 1935 (age 87) Quincy, Massachusetts, US)’
칼 안드레의 말을 인용해보면, ‘무엇을 위해서 그린다’가 아니라 ‘그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작가 자신에 대한 이야기부터 사회적 메세지까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작품이 곧 메세지고, 관객과 소통의 매개체가 된다.
대한민국의 예술대학교에서는 ‘예술 = 성적’이 아니다. 말 그대로 교양, 전공의 시험이 곧 ‘성적’과 직결된다. 순수한 창작은 의미가 없다. 교수들의 입맛에 맞는, 교수들이 좋아하는 작품을 그리는 학생이 말 그대로 우수한 학생이 된다.
그럼 우수한 예술대학 학생은 ‘우수한 예술가일까?’
예술을 성적으로 치환하는 이 공간에서 당연히 개인의 창작은 온전히 존중 받지 못한다. ‘성적’이라는 굴레 안에서 나의 창작에 대한 순수한 열정은 ‘사고’를 이내 제한시킨다. 이 것은 미술대학 입시와도 연결된다고 생각된다.
언젠가 인터넷 뉴스에서 직장인들의 계급층에 따른 창의력 비교 도표를 본적이 있다. 점점 직위가 올라갈수록 창의력이 현저히 감소하는 모습을 보이는 차트였는데, ‘승진’에 대한 집착과 연차로 인한 경력, 그로 파생되는 어떠한 ‘권력’을 지키기 위해 인간의 뇌는 사고가 극히 한 방향만을 보게 되어 정작 창의력이 필요한 영역에서 자유로워지지 못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어찌되었든 ‘성적’이라는 것으로 예술가의 자질을 평가하는 예술대학의 현행보다, 학생 개인의 성향과 가치관을 존중하고 그 학생이 생각하는 사고력을 확장시켜주는 수업문화가 형성되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우리도 막연히 어떠한 방식의 ‘성공’을 위해 막연히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이상’적인 꿈을 만들어가기 위해 더 새롭고 훌륭한 결과물들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곧 예술의 본질이자, 새로운 시대 예술가들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