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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09 - 20.01.12

‘어떻게든 되겠지’ art critic by 박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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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음으로 된 그 말의 현재는 작가 개인으로부터 출발해 타인의 언어를 담기도 하는 중립의 상태에 진입했다. 이는 작가의 사적 영역과 페인팅 사이의 거리가 확보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의미가 직조되지 않는 말, 선택을 지연시키는 말, 단순하고도 보류되는 말, 그 말로 이루어진 세계 안에서 고주안은 『어떻게든 되겠지』를 '어떻게든 되게 했을 것'이 분명하다.

Date

2019.11.09 - 20.01.12

Location

SPACEJAK

Type

Solo Exhib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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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주안 '어떻게든 되겠지'

『어떻게든 되겠지』는 앞서 언급된 자조적 창작 과정의 고민, 작가를 둘러싼 극단적 환경이 주는 압박감이 동시에 작동한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문장이 주는 암시란 이를테면 다음과 같다. 어떠한 상황에 내 맡기거나 스스로를 신뢰하거나이다.

고주안 '어떻게든 되겠지'

어떻게든 되겠지. Que sera sera
고주안 / KOHJUAHN / 高主安
painting 2019_1109 – 2020_0112
스페이스작SPACE_JAK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작동 407번지 B1
instagram.com/space_jak

Colors

고주안 '어떻게든 되겠지'

어떻게든 되게 하는 ● 때때로 낙서는 주체적인 드로잉이라기엔 이끌려가는 드로잉에 가깝다. 전화기를 들어 통화를 하며 무심결에 그려내는 곡선과 직선의 조합이라던가 빈 노트에 끄적이곤 하는 반복적인 형태들이 그렇다. 이렇게 낙서를 이끄는 생각은 무의식과 의식을 오간다. 고주안이 그의 신체적 콤플렉스를 다루며 그려냈던 이미지들 역시 사고의 흐름과 무의식의 발현 그리고 펜을 쥔 손의 즉각적인 수행이 결합된 모습이다. 사회적 남성성에 대한 압박감과 동시에 반대급부로 깃든 자조적 블랙 유머는 고주안의 기호와 상징을 통해 반복해서 등장한다. 기계와 인간이 결합된 등장인물이라던가, 사물화된 신체 등의 장면은 고주안이 그의 콤플렉스를 부러 더 가시화하듯 '인류보완프로젝트'로 명명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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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주안 '어떻게든 되겠지'

비정형의 드로잉에 가독성 있는 텍스트를 삽입한 형태의 드로잉과 페인팅을 하던 시기가 지난 뒤 고주안의 작업은 변모의 시기를 갖는다. 친구들과 자음으로 대화를 하곤 했던 방식이 페인팅에 적극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자음 대화는 그 맥락을 공유한 이들만이 독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폐쇄적이고도 사적인 은어에 가깝다. 밝히고 싶지 않은 이야기, 쓰고 싶지만 누군가 읽는 것은 바라지 않는 마음의 상태가 더 강조되었다. 각각의 문자나 숫자에는 고주안이 기억하는 내러티브가 있지만 이 배열은 눈치챌 수 없도록 분산되어 있다. 재료 또한 종이, 펜, 오일파스텔을 주로 쓰던 방식에서 캔버스 위에 아크릴 페인팅으로 바꾸며 평면적 물성에 무게를 더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고주안은 이런 일련의 작업방식을 '가짜밀도'라고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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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주안 '어떻게든 되겠지'

고주안식의 '가짜밀도'란 페인팅에 있어 물감의 밀도, 운동성, 붓끝의 움직임에 의해 뾰족해지는 부분, 흩뿌려진 물감의 방울 등을 컨트롤 하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이는 의도된 우연성, 자의적 표현에 대한 내용이기도 하다. 고주안은 '그림을 그리는 동안의 해소'에 대해서도 말한 적이 있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 자체가 주는 만족감으로 인해 그 행위가 더 강조되는 방식으로 페인팅에 접근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또한 고주안이 일컫는 '가짜밀도'에 해당되기도 하지만 앞선 일련의 내용은 작가의 의지와 무관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 진실성을 되찾는다. 사실 고주안의 회화에 대한 견해는 '경험의 압축'으로 명명된다. 이는 각각의 이야기와 사건을 가진 자음들이 평면의 프레임에서 다시 발화되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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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주안 '어떻게든 되겠지'

이번 전시 『어떻게든 되겠지』는 앞서 언급된 자조적 창작 과정의 고민, 작가를 둘러싼 극단적 환경이 주는 압박감이 동시에 작동한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문장이 주는 암시란 이를테면 다음과 같다. 어떠한 상황에 내 맡기거나 스스로를 신뢰하거나이다. 혹은 어떻게든 된 뒤의 결과에 대한 미련이 없거나 그저 낙관적인 결과만을 기대하는 태도에 기인하는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를 다시 말하면, '어떻게든 된다'는 강력한 긍정의 제스처이자 '(내가) 어떻게든 되(게 만들)겠지'라는 작가적 의지가 숨어있는 말이 된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확실성과 불안에 필요한 것 두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긍정과 의지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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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주안 '어떻게든 되겠지'

고주안의 페인팅에는 여전히 말이 많다. 그러나 자음으로 된 그 말의 현재는 작가 개인으로부터 출발해 타인의 언어를 담기도 하는 중립의 상태에 진입했다. 이는 작가의 사적 영역과 페인팅 사이의 거리가 확보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의미가 직조되지 않는 말, 선택을 지연시키는 말, 단순하고도 보류되는 말, 그 말로 이루어진 세계 안에서 고주안은 『어떻게든 되겠지』를 '어떻게든 되게 했을 것'이 분명하다. ■ 박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