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F YOUNG ARTIST ‘S’

‘나의 행복은 무엇일까?’, ‘작업을 왜 하는가?’,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에 대한 본인의 지속적인 고민으로 만들어진 작업들은, 일상에서 개인이 마주하는 심리적 엔트로피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헝가리 심리학자 미하이 척센트 교수의 ‘몰입(Flow)’을 인용하여 이야기한다.

TITLE

2018 부천문화재단 ‘청년예술가S’ 실연회

TYPE

PROJECT

ARTIST

강민지, 고사빈, 고주안, 권민경, 권한솔,
김은선, 박신애, 박은정, 변성빈, 송주형,
신재은, 양자경, 이소영, 이영호, 하정훈

LOC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삼작로 53 B39 아트벙

DATE

2018.10.05 – 26
화요일 – 일요일 10:00 – 17:00 (매주 월요일 휴관)

내 집이라는 이름의 감옥, 혹은 안식처

2018년, 부천의 오래된 골목 어귀에 작은 빌라 하나를 계약했다. 누군가에겐 그저 낡은 벽지와 뿌연 창문일 수 있었겠지만, 내게는 생애 처음으로 얻은 그야말로 ‘내 집’이었다. 월세의 불안정함에서 벗어난 나만의 공간. 그곳에서 나는 마침내 숨을 고를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평온은 오래가지 않았다. 안락한 구조 속에 앉아 앞 건물로 막혀있는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일이 잦아졌고, 벽에 걸어둔 캔버스의 밑 바탕은 점점 말라가기만 했다. 가끔은 내가 벽에 걸린 것 같았다. 나를 불안하게 만들어왔던 무언가로부터 해방된 줄 알았지만, 실은 더 정교한 감옥에 스스로 들어온 것 같았다. 너무 오랫동안 불확실한 미래를 예감하며 살아온 탓일까. 안정을 찾고 나서야 비로소, 나를 지탱해오던 것이 ‘불안’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낙서로 흐르는 기억들, 그 첫 번째 해방

작업은 언제부턴가 의무가 되었고, 의무는 언제나 나를 질식시켰다. ‘해야 하는 일’이 된 그림은 더 이상 나를 위로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손은 가만히 있지 못했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 이루지 못한 상상, 증명되지 않은 나. 그 모든 것을 견디기 위해서라도 나는 뭔가를 그려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기억 저편에서 잠시 잊고있던 장면이 하나 떠올랐다. 2017년의 어느 밤, 재즈 피아니스트 이하림과 ‘재즈 앨리’라는 작은 공간에서 공연을 했던 순간. 즉흥 재즈 위에 떠오르는 대로 그림을 그리던 그 짧고 강렬했던 몇 분. 정돈되지 않았지만 분명히 내 것이었고, 그곳엔 처음 느껴보는 해방감이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천 조각과 종이를 펼쳐두고, 늘 머릿속에서 나를 지배하던 ‘자음’과 ‘형식화된 기호’들을 과감히 지워나갔다. 예측할 수 없는 붓의 흐름, 갑자기 튀어나온 색의 충돌, 손이 아니라 감정이 이끄는 방향으로 화면을 채워갔다.

어린 나, 엄마의 그림자를 따라 걷던 시절

어쩌면 이 모든 시작은 훨씬 더 오래전, 유년 시절의 조용한 어떤 오후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자주 메모지에 글을 쓰곤 했고, 나는 그 옆에 앉아 따라 그렸다. 글씨인지 그림인지 알 수 없는 형상들. 무의식적인 곡선, 리듬처럼 반복되는 선. 나는 그것들을 ‘낙서’라 부르지 않았고, 어른들은 그것을 ‘재능’이라 칭하지도 않았다.

그저 따라 그리는 것이 좋았고, 상상했던 것들을 뚝딱 그리고 종이를 접어 일기장에 끼워두던 시간. 그 기억은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나의 작업으로 되살아났다. 라이브페인팅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참여한 아이들이 붓을 들고 아무 생각 없이 그리는 모습을 볼 때, 나는 그때의 나를 본다. 그들은 망설이지 않는다. 그저 ‘그린다’는 행위 자체를 즐긴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서 잃어버렸던 나를 발견한다.

관계의 부서짐, 감정의 잔해들

2018년. 이 해는 유독 감정의 색이 진했다. 안정이라는 단어가 손에 잡힐 듯했지만, 동시에 가장 소중했던 두 명의 동료와의 이별들이 나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감정이란 것이 이렇게도 물리적인가 싶을 만큼, 몸은 바로 반응했다. 머리카락은 빠졌고, 관절은 아팠으며, 몸은 지독하게 피곤했다.

무엇으로든 그 상실을 메워야 했다. 그림은 결국 나에게 남겨진 가장 오래된 언어였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그것은 감정을 풀어내는 창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나를 구조하는 구조물이기도 했다. 그 위에 얹은 색들은 ‘덜컥’하고 쏟아져 나오는 감정의 층들이었고, 무의식적으로 반복된 얼굴들은 내가 알지 못했던 내면의 자화상이었다.

나를 치유하는 여행, 그리고 그 기록들

그 무렵 나는 도망치듯 일본으로 여행을 떠났다. 아무 계획도 없었고, 그저 카메라 하나와 작은 스케치북을 챙겼다. 시즈오카의 한 골목길에서, 우연이 아니라고 하기엔 기묘하게 만났던 숙소의 호스트는 비주류 뮤지션이었고, 나는 그와 밤새 음악과 미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다이소에서 산 저렴한 물감과 얇은 종이로 숙소의 테이블 위에서 낙서를 했고, 무작정 페이스북 라이브를 켜 그림을 그렸다. 그 영상은 돌아와 짧은 영상 작품으로 편집되었고, 작은 디스플레이 속에서 전시되었다.

여행 이후 부모님이 일하시던 가평의 펜션에서 일을 도우며, 한여름의 땀과 사람들 속에서도 나는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내게 선택이 아니었다. 그저 ‘있어야만 하는’ 무언가였다. 그렇게 태어난 얼굴 없는 형상들, 해괴한 눈과 입은 내 감정의 찌꺼기였고, 동시에 그 시기의 풍경들이었다.

몰입, 그리고 다시 찾은 나의 본질

시민들이 참여하는 즉흥적인 라이브 페인팅 프로젝트 속에서 나는 문득 진심으로 ‘즐겁다’는 감정을 느꼈다. 그건 그저 퍼포먼스를 하는 기쁨이 아니라, 순수한 몰입의 상태였다. 아이처럼 생각 없이 그리는 순간, 나는 사라지고 남는 건 오로지 ‘행위’뿐이었다.

나는 깨달았다. 내가 찾던 것은 거창한 철학이나 이론이 아니었다. 내게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직접 겪고, 느끼고, 살아낸 감정들이고, 그것을 해소하기 위한 ‘무의식적인 붓질’이었다. 나의 작업은 그 과정 속에서 비로소 존재할 수 있다.

마무리, 그러나 끝나지 않는 이야기

이 전시는 내게 하나의 정리였다. ‘무엇이 나를 지켜왔는지’, ‘무엇이 나를 흔들었는지’를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는 한 가지 확신에 가까운 감정을 얻었다.

‘나는 계속해서 그릴 것’

그것이 내 존재를 증명하는 방식이며, 감정의 집을 짓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